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 첫 일정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입니다.
왜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첫걸음을 하는 걸까요?
[문재인 / 대통령 (6월 23일, 참전용사 유공자 위로연) :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 작전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전후 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 덕분에 흥남에서 피난 온 피난민의 아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1950년 11월 말, 평안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는 압록강 진격을 위해서 북상하던 미 해병 1사단 주축의 연합군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임시수도였던 '강계'가 멀지 않았기에 남북통일은 마치 손에 잡힐 듯했던 시기였는데, 연합군은 중공군에게 야간공격을 받게 됩니다.
장진호 전투의 시작입니다.
만5천 명의 연합군이 12만 명의 적에게 포위된 채로 싸워야 했고, 영하 30, 40도를 넘는 개마고원의 추위 또한 적이었습니다.
전투가 휩쓸고 간 뒤의 실제 모습인데요.
시신들이 쌓여있고요.
얼어붙은 시신들도 많았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로 수천 명이 사망했고, 만여 명이 부상했습니다.
연합군 대부분이 희생을 치른 셈이죠.
육상 퇴로가 끊긴 미군은 포기하지 않고 연합군을 흥남부두에 집결시켰습니다.
흥남철수 작전을 세워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철수하려는 계획이었는데요.
이때 전쟁사에 유례없는 초대형 규모의, 초단기간의 '기적의 철수작전'이 펼쳐집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배에 안간힘을 쓰며 올라타려는 모습, 가족과 생이별하는 이 절절한 장면들, 모두 실제 흥남철수 작전 때를 묘사한 겁니다.
병력과 장비, 군수물자를 싣고 재빨리 철수해야 했던 미군은 한국군 지휘관들의 설득 끝에 물건을 버리고 10만 명의 피난민을 수송선에 실었습니다.
문 대통령의 부모님과 누나도 가장 마지막에 남은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탄 피난민이었고요. 그렇게 피난 온 3년 뒤 거제에서 문 대통령이 태어났습니다.
장진호 전투의 희생을 바탕으로 흥남철수 작전이 있었던 거죠.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미국 버지니아주 미 해병대 박물관에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세웠고, 바로 이곳에서 문 대통령의 첫 일정이 시작되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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