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전쟁에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나라죠.
그만큼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와 건축물들이 곳곳에 있는데요.
테네시주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다리가 있다고 합니다.
안미향 리포터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터]
한인 5천 명이 사는 미국 테네시의 주도 내슈빌.
뛰어난 조명법으로 상을 받았을 만큼 아름다움을 뽐내는 다리가 있습니다.
평범했던 이 다리는 2006년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 다리'가 됐습니다.
[김용근 / 내슈빌 한인회장 : 다리를 고치면서 이 다리 이름을 뭐로 지을까 하다가, 그때 당시 마침 공사 인부 하시는 분들이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모여서 그러면 이 다리를 한국전 추모 다리로 만들자, 해서 이전 한인회장과의 협력하에 (만든 거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테네시 주민들은 각자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1950년,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던 톰 캐롤랜드 씨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중공군의 합류로 후퇴하다 두만강에서 북한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 캐롤랜드 씨.
[톰 캐롤랜드 / 87·한국전 참전용사 : 벌레가 기어 다니며 이리저리 깨물었고, 저는 수염도 이만큼이나 길었죠. 그곳에서 무려 33개월이나 감금돼있었어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샤워도 못 하고…. ‘위생'이라는 개념은 없었어요. 칫솔 같은 도구조차 없었죠.]
1953년 8월 포로교환 협정이 체결됐고, 마침내 3년에 가까운 수용소 생활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톰 캐롤랜드 / 87·한국전 참전용사 : 신문에 제 이야기가 나왔던 겁니다.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던 톰의 귀향을 환영한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서 돌아온 유일한 로빈슨 카운티 사람이다.]
수용소 못지 않은 고충을 겪은 참전용사들도 많습니다.
바비 스미스 씨는 가혹한 추위를 잊지 못합니다.
발을 절단할 정도였던 동료들도 있다며 자신은 이 정도인 게 오히려 천운이라고 말합니다.
[바비 스미스 / 87·한국전 참전용사 :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왜요?) 너무 나쁜 기억이 많죠. 그걸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어요. 정신 충격을 심하게 받아 신체 질환을 얻었죠.]
잔인한 역사를 그래도 후세들이 잊지 않고 감사함을 전하려는 노력이 반갑다는데요.
[바비 스미스 / 87·한국전 참전용사 : 원래는 그냥 다리였죠. 한국전 참전했던 용사들이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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