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위험 알고도 진압 강행...여론전에 급급" / YTN

YTN news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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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벌어진 '용산 참사'는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원 등 6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친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태로 꼽힙니다.

당시 경찰 지휘부가 위험을 알고도 무리하게 진압을 강행했고, 참사 이후에는 자기변호와 여론 덮기에만 급급했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조은지 기자!

당시 남일동 건물 옥상이 불타던 기억 아주 생생합니다.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해서 사태를 키웠다, 이게 조사 결과죠?

[기자]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참사를 한마디로 '농성자 조기진압을 목표로 하다가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원의 생명과 안전이 무시된 사건이다'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당시 재개발 건물 남일당 세입자들은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했습니다.

경찰은 망루 설치 당일 농성 3시간 만에 경찰 1600명, 경찰특공대원 99명을 동원했고 25시간 만에 진압작전을 지시했습니다.

기중기로 경찰특공대원을 실은 컨테이너를 끌어올려 옥상에 투입했는데요.

두 차례 옥상에 진입을 해서 모두 불이 났고 특히 2차 진입 때 망루가 컨테이너와 충돌해 무너져 내리면서 불이 났습니다.

그래서 철거민 5명 등 6명이 사망했습니다.

경찰 특공대원들은 두 번째 망루에 진입할 때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독한 냄새가 났다, 휘발성 유증기가 가득 차서 술에 취한 듯 몽롱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당시 경찰 지휘부는 옥상 망루에 시너와 화염병 등 위험물이 다수 있는 걸 알았고 농성자들이 분신이나 투신, 자해를 할 수 있다고 우려를 했지만 망루의 구조를 분석하거나 진입 방법을 논의한 적이 없습니다.

또 에어매트는커녕 고가 사다리차나 화학소방차 등 최소한의 대비책도 없었습니다.

실제 당시 경찰특공대장 대대장은 '작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작전을 연기하자' 이렇게 보고했지만 당시 경찰청 지휘부는 '겁 먹고 못 올라가는 거냐? 밑에서 물포를 쏘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당시 서울청장이자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이었죠.

사고 10시간쯤 전인 2009년 1월 19일 오후 7시 기능별 대책회의를 통해 진압작전의 시간과 개요 그리고 경찰특공대 투입 등을 최종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압작전이 시작된 1월 20일 당... (중략)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03_20180905120625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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