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과 12월 대선으로 정권을 이양하게 된 전두환 정권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파격적으로 강화하려고 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시도는 노태우 당선자 측의 반발로 무산됐는데요.
최근 공개된 외교 문서를 통해 드러난 당시 상황을 유투권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씨가 당선된 직후인 1987년 12월 말, 외무부는 일부 대사관에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 나라에서 대통령 당선자는 물론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예우하는지 서둘러 알아봐서 보고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5공화국 정부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외무부 서류철에서 나온 추진안을 보면, 우선 국내 행사에서 전직 대통령의 서열을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에 이은 4번째 순위로 정해놨습니다.
미국 정계의 관행을 아예 명문화시킨 겁니다.
또 해외여행에 따른 예우 조항을 따로 만들어 국무총리 이상의 예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며칠 뒤에 돌아온 대사관들의 보고 내용은 예상대로, 이런 조항들의 유례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줬습니다.
[이경선 /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40여 개 나라 가운데) 헌법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규정을 갖고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어요. 한 나라, 두 나라밖에 없어요. 그것도 우리나라 형태가 아니라 약간 의전을 우대해주는 정도로만….]
결국, 이듬해 2월 실제로 개정된 법률에선 이런 내용은 다 빠졌습니다.
노태우 당선자 측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을 지원하는 조항이 처음으로 포함됐습니다.
또 전직 대통령이 국정자문회의 의장이 아닌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는다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형식적 자문기구였던 국정자문회의와는 달리 국가원로자문회의는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어 당시 5공과 6공 세력 간의 핵심적인 갈등 요인이었습니다.
결국, 전두환 씨가 막후 실세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은 1년여 만에 폐지됐습니다.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안'은 당시 전두환 씨가 마지막 순간까지 평범하지 않은, 군림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남으려고 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YTN 유투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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