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를 밑도는 맹추위에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부는 20일 새벽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메트로 신정차량사업소.·
서리가 얼어 반짝반짝 빛나는 아스팔트를 따라 5분 정도 걸으니, 야외에 설치된 9개의 전철 검수라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영업이 끝나는 시간부터가 본격적인 작업시간으로 출근 시간 전까지 서둘러 점검을 마쳐야 한다.
빽빽히 세워진 전동차들은 5분마다 '치이이익 푹'거리며 공기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런 전동차 밑으로, 기름때 묻은 장갑을 낀 검수관들이 안전모를 고쳐 쓰고 들어갔다.
검수관들이 내뿜는 입김으로 전동차 밑에서는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한 검수관은 "아 추워"라고 중얼거리며 연신 손바닥을 비벼대며 전동차 구석구석을 살폈다.
매서운 찬바람은 야외 차량기지 안으로 끊임없이 들이쳤고 귓등에서는 바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검수팀 신민창 부장은 "6만 8천평이나 되는 차량기지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린다"면서 "대기실에서 틈틈이 몸을 녹이고 장갑을 두장씩 낄 때도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달라질 것은 없다"면서 "시민의 발인 지하철 점검을 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 여성 밤길 책임지는 장년들 "날씨 추워도 가슴은 따듯"
늦은 귀갓길 오후 10시 논현역 5번 출구 앞에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김규리(58.여)씨와 허인(54)씨가 발을 구르며 서 있었다.
길거리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집까지 바래다줘야 하는 일인 만큼 한파는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김씨는 추위에 대비해 상의만 6겹을 껴입을 정도로 중무장했지만, 손끝이 시린 것만은 어찌할 수 없다.
양손에 쥔 핫팩을 계속해서 흔들면서 그는 "성실한 편이라 웬만해선 떨지 않는데, 요즘에는 정말 덜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며 코를 훔쳤다.
허인씨의 코와 볼은 일을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빨갛게 변했다.
이들은 3시간 동안 논현역 일대 빌라촌을 누비며 시민 22명을 만났다.
일부 시민들은 귀까지 목도리를 싸매고 걸음을 재촉하며 안심귀가서비스를 사양했고, 8명만이 이들과 동행했다.
강민수(37.여)씨는 "퇴근하고 쉬는 시간인데, 부모님뻘 되시는 분들이 이런 엄동설한에 일하는 게 걱정된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규리씨는 "남의 짐을 들어주고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게 기쁨이 된다"며 "날씨는 추워도 가슴 한켠은 따듯하다"고 말했다.
◈ 맹추위에 '얼어붙은 콧물'…거리를 가꾸는 '미화원'
환경미화원 이충호(56)씨의 하루는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한다.
콧물이 얼어붙는 맹추위에 귀가 시뻘게진 채로 강남역 일대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말없이 쓸어담았다.
갓길에 쌓인 쓰레기를 줍다 하마터면 택시에 부딪힐 뻔했지만 "매번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빗질을 재촉했다.
어느새 시린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그렇게 수십분이 흘러서야 제대로 허리를 편 그는 취재진에게 "음료수 한잔 하지?"라며 퉁퉁 부은 손에 담긴 음료를 건넸다.
같은 일을 하는 이효진(44)씨는 "제일 추운 시간대에 나오는 것 자체가 곤욕"이라면서 "바람까지 불면 쓰레기가 도로로 날리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남들보다 일찍 나와 지저분했던 거리를 치우는 일에 은근히 성취감을 느낀다"면서 "고생스러워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몸을 웅크리다 못해 움직일 수 없게 하는 대한(大寒)의 기세를 꺾어가며 이들이 오늘도 지켜내는 건 시민들의 안전과 안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