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21일 대법원이 강제추행 성립기준을 대폭 낮췄습니다.
지금까지 저항하기 어려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강제추행이 인정됐는데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며 40년 만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백승우 기자와 사건을 보다에서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Q1. 백 기자, 기준이 어떻게 완화된 겁니까?
[기자]
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필사적으로 저항했느냐를 따졌습니다.
그러면서 저항을 못 한 경우 '항거 불능' 상태였는지 보고 강제추행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 21일, "항거 불능을 요구하는 기존의 판례 법리가 더 이상 강제추행죄로 인정하는데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폭행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유형력"으로 협박은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해악 고지"정도면 충분하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꼭 물리적 강제가 아니더라도 항거 불능일 수 있다고 본 겁니다.
Q2. 대법원은 기존 기준이 옛 관념의 잔재라고 했다면서요?
네 대법원이 강제추행죄와 관련해 기준을 바꾼 건 40년 만인데요.
대법원은 "항거 불능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강제추행죄로 인정하는 건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하던 옛 잔재"라고 봤습니다.
[김명수 / 대법원장 (지난 21일)]
"종래의 판례 법리에 따른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2차 피해를 야기한다는 문제인식을 토대로…."
대법원은 시대가 바뀐 만큼 1983년에 설정된 기존 법리를 폐기하고, 새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Q3. 어떤 사건 판결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건가요?
네, 지난 2014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판결이었는데요.
당시 군인이었던 A 씨는 자신의 집 방안에 있던 15살 사촌 여동생 B 양에게 접근했습니다.
"안아달라"며 여동생의 손을 잡고 추행하려다 거부당하자 침대에 쓰러뜨리고 신체 부위를 만졌는데요.
1심에선 A 씨의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는데, 2심 법원이 이를 뒤집은 겁니다.
B 양이 저항하기 곤란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강제추행이 아니라 판단한 겁니다.
이에 대법원이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Q4. '항거불능' 기준이 이슈가 된 적이 또 있었다고요?
지난 2019년에 배우 강지환 씨가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을 성폭행하고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강 씨는 준강제추행 혐의를 일부 부인했습니다.
"피해자가 사건 당시 항거불능 상태에 아니었다"고 주장한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근 재판에서도 이런 가해자들의 주장은 이어졌는데요.
외국인 여성 신도를 지속적으로 추행하거나 준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종교단체 JMS에 정명석 씨 측도
지난 2월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항거불능이 아니었다"고 주장한 건데요.
이번에 대법원이 강제추행 새 기준을 제시한 만큼 이런 '항거불능' 공방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사건을 보다였습니다.
백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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