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피켓·퇴장·신사협정…국회 자화상 '대통령 시정연설 풍경'
[앵커]
역대 대통령들은 매년 이맘때 국회를 찾아 예산안에 대한 입법부의 협조를 구했습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내용도 관심이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여야의 모습은 정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국회의 자화상과 같았습니다.
장윤희 기자가 역대 정권의 시정연설 풍경을 이번 주 여의도풍향계에서 돌아봤습니다.
[기자]
어느덧 11월입니다.
매년 이맘때 국회는 내년도 나라 살림 짜기에 바쁜데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이 시기에 국회를 찾아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한 입법부의 협조를 구해왔습니다.
이 형식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施政演說)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집권 첫해에 비해 내용과 형식이 달라져 화제를 모았는데요.
통상 여당 대표부터 언급하던 관례를 깨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먼저 호명했습니다.
"또 함께해 주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 이정미 정의당 대표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님."
지난해에는 '문재인 정부가 방만 재정을 폈다'고 비판했지만, 올해는 전 정부 언급 대신에 '현 정부의 계획'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건전재정은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 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퇴장할 때도 야당 의원들을 찾아 먼저 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야당 의원들은 시선을 돌리거나 굳은 표정을 유지하다 마지못해 악수에 응하며 냉랭한 정국의 단면을 보였습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받아들이는 여야의 모습은 당대 정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맨 왼쪽, 지난해 시정연설 모습에서 빈자리가 눈에 띕니다.
제1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보이콧을 했기 때문인데요.
그 옆 화면은 최근 시정연설 상황으로 자리마다 의원들이 가득 앉아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1년 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순방 발언 논란과 당사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정연설에 불참했습니다.
시정연설 보이콧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 규탄한다!"
"윤 대통령님 힘내세요!(박수소리)"
올해는 여야 '신사협정' 속에 불참도, 고성도 없었습니다.
다만 민주당이 본회의장 밖은 신사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정부 국정운영을 비판하는 피켓을 결국 들긴 했습니다.
시정연설 직전 대통령과의 사전환담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참석했고, 17곳 상임위원장 간담회에 이어 오찬까지 진행됐습니다.
그간 행사장에서 마주치더라도 짧은 인사말만 나눴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공식 환담 자리에 함께한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전임 대통령들의 국회 시정연설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1988년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같은 해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첫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보통 취임 첫해에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을 하고, 이후에는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대통령이 매년 국회를 방문해 시정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은 것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입니다.
야당 의원들의 피켓시위 역시 이 시기에 관행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2015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각자 책상 앞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붙였고,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 만류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여야 갈등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직후 더욱 격해졌고, 그해 박 전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깜짝 '개헌 카드'를 꺼내 들며 정국 돌파구 마련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 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을 위한 실무적인 준비를 해 나가겠습니다."
이듬해 집권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시정연설에서 야당 의원들의 피켓 시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검은색 상복 차림에 '근조' 리본까지 달며,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에 항의했습니다.
"의원 여러분께서도 예의와 품격을 갖추어서 시정연설을 경청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문 전 대통령은 정권 첫 예산안 의미를 강조했지만,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문 전 대통령 연설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988년 이후 시정연설을 한 대통령은 무려 여덟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국회의 풍경이 크게 진전됐다는 느낌은 없는데요.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나고 예산안 처리는 이제 국회에 공이 넘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법정 시한을 3주 넘게 어기고서야 예산안이 통과됐습니다.
민생 문제에서만큼은 손을 잡겠다던 여야,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이번에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여의도풍향계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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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김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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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 장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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