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구를 단죄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왜 그랬는지를 찾아내면 국민이 알게 될 테고, 그러면 역사를 잘못 쓰려 했던 모든 사람이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테니까...꼭 필요한 일입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는 부친의 개묘를 묵묵히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차남 호성 씨도 형의 등을 감싸 안으며 조용히 아버지의 무덤을 바라봤다.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는 선생의 사인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유골을 정밀 감식하기로 하고 5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공원에서 추도의식을 갖고 유골수습 등 개묘 작업을 시행했다.
조용하던 하늘도 본격적인 개묘가 시작되자 하얀 눈을 뿌리며 고인의 무덤 주변을 새하얗게 덮었다. 지난 8월, 파주 광탄면 묘소 뒤편 석축이 붕괴되면서 묘를 현재의 장소로 이장한 것을 제외하면 37년 만에 고인의 첫 외출이었다.
마침내 고인의 유골이 관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고, 타살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두개골의 원형 상흔도 선명하게 들어나 있었다. 두개골을 제외한 다른 유골의 모습은 비교적 온전하게 관에 놓여 있었다.
무엇이 고 장준하 선생을 죽음으로 이끌었는지, 그의 죽음 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지 대책위는 이번 감식을 통해 밝혀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비공개 장소에서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 등 민간 법의학자 팀을 통해 정밀 조사될 유골의 감식 결과는 이르면 두 달 안에, 늦어도 여섯 달 안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함께 감식 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획/제작 : 박기묵 방기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