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1월 20일 서울 용산 4구역에 있는 남일당 건물 위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던 철거민들과 이를 진압하던 경찰이 치열하게 대치하던 중 옥상 망루에서 불꽃이 치솟아 오른 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불길 속에 6명의 소중한 목숨이 스러졌다.
당시 동료 철거민들과 함께 망루 위에 섰던 김재호 씨(57).
3년 9개월이라는 긴 옥살이를 마치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된 그가 용산참사 4주기를 맞아 남일당 건물터를 다시 찾았다.
이제는 삭막한 주차장으로 변한 남일당 터를 살펴보던 김 씨는 주차장 담벼락에 붙어있는 '용산참사 진상규명'.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들을 쓰다듬어 보며 "이 글들을 읽어보니 만 4년 동안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왔다 갔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며 "함께 해주신 시민들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어차피 이곳은 나중에 공원으로 개발될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리해서 미리 건물을 부숴버릴 이유가 없었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경찰들은 왜 그렇게 급하게 밀고 올라왔어야 했나"며 원망 어린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떠올랐는지 김재호 씨는 "그때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며 갑자기 밀려 들어와 캄캄한 망루 안에서 정신없이 우왕좌왕했던 기억만 난다"며 "그때 일이 너무나 악몽 같아서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도 볼 수가 없었다"고 진저리를 쳤다.
김씨는 "3년 9개월을 징역 살다 나왔지만 그래도 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어서 괜찮다"며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은 그럴 수 없어 참 안타깝고 죄스럽다"고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김재호 씨는 "당시 투쟁했던 동료 철거민들이 빠른 시일 내에 석방됐으면 좋겠다"며 "우리가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심을 청구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3년 9개월 길고 길었던 수감생활 동안 딸 김혜연 양(13)에게 직접 그려 보냈던 만화 편지를 엮어 '꽃피는 용산,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최근 출간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김씨는 "나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인 딸아이가 심리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였다"며 "항상 나와 함께 지내왔던 혜연이가 나와 떨어졌다는 충격에 2년 가까이 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딸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왜 내가 가족들에게 이런 짐을 지게 했을까'라는 생각에 망루에 오른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며 당시 괴로웠던 심정을 고백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와야 나을 병"이라는 아내의 말을 들은 김재호 씨는 딸아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편지에 그림을 하나둘씩 그려 넣기 시작했고 "혜연이가 아버지의 그림에 반응하며 행동도 달라져 간다"는 아내의 소식을 듣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이틀에 한 번꼴로 가석방 때까지 총 400통의 만화편지를 썼다.
이제는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서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김씨는 "그저 제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혜연이가 4년이라는 공백 기간에 중학교 1학년이 돼버렸고 그 기간에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며 "그러나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기획 / 제작 : 강종민 김송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