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한국인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동포들의 힘으로 세워졌습니다.
강제동원 등으로 끌려와 숨진 이들을 위로하는 비석이 서기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는데요.
나가사키에서 이경아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기자]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7만 명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권순금 /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 큰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원자폭탄'이라고 했어요.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당시 원폭에 스러져 간 한국인 희생자는 최대 만 명.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 동포들의 손으로 처음 세워졌습니다.
위령비를 세우자고 뜻을 모은 뒤 30년 가까이 지나 이룬 결실입니다.
[강성춘 / 나가사키 민단 단장 : 동포 사회가 염원해 온 위령비가 세워져 감개무량 합니다. 추도할 수 있는 장소가 이제야 생겼습니다. 원폭에 돌아가신 선조들도 하늘에서 기뻐하실 겁니다.]
한국과 교류를 이어온 일본 고교생들은 천 마리 학으로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오오쿠마 유카 / 나가사키 고등학생 평화 사절단 : 한일 관계나 과거의 역사 등을 계속 배우지 않으면 안되고, 알아야 할 책임이 제게는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인 희생자 다수는 이 지역 조선소 등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강제징용'이라는 말은 비석 안내문에 담지 못했습니다.
시 당국이 이 문구에 난색을 표해 '자신의 뜻에 반해서'라는 표현으로 바뀐 겁니다.
1970년대 일본 시민단체가 세운 추도비에 남은 문구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일본 내 역사 인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신카이 토모히로 /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 과거를 고치려는 또는 부정하려는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 우익들의 사고방식입니다만 지금의 일본 정부가 이 '역사 수정주의'에 올라탄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원폭의 비극 그 한가운데는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끌려온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역사를 위령비는 존재 그 자체로 일본 사회에 말하고 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YTN 이경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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