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5·18 민주화운동 42년 만의 고백…'그날의 광주'
지난주, 5·18 민주화운동이 42주년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슈현장에선, 5·18 당시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분입니다,
김귀삼 전 계엄군 3공수 특전여단 중사와 그날의 이야기들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당시, 공수부대를 자원해 입대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도 궁금한데요.
입대 4년 만에 광주로 투입이 된 건데, 당시에 가족분들은 모두 광주에 계셨었다고요?
당시에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은 2만여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상황 증언에 나선 사람은 1% 정도, 그러니까 200여명에 불과하다고 알려집니다. 공개적으로 나서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게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증언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입을 열기까지, 당시의 기억을 안고 오랜 시간 살아오셨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어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 작전 상황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여쭤볼텐데요. 그간 핵심 쟁점은 시민을 향한 발포 경위, 그리고 명령 여부였죠. 최근엔 공수여단장이 공중에 권총을 쏘면서 현장 지휘를 했다는 증언도 나왔는데, 당시 상황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시민들을 강제 해산시키라는 명령이 위에서 내려왔다고 알려지는데, 당시 계엄군은 어떤 무기를 사용했고 또 어떤 식으로 강제 해산을 시켰는지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고요. 또 그 외 상부에서 받았던 명령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지요?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따로 교육을 받거나 하진 않았나요? 어떤 지침 같은 것도 있었나요?
5월 20일, 광주역에서 시민들과 부딪히던 상황에서도 계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당시 선두에 계셨다고 했는데, 맞닥뜨렸던 시위대 선두 그룹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광주역 집단 발포 당시, 계엄군이 광주역 주변 건물 옥상에 M60 기관총을 설치해 위협 사격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는데, 당시 상황 조금 더 자세히 전해주시죠. 혹시, 시민들을 향한 직접 발포도 있었습니까?
계엄군이 의도적으로 시민들의 상체를 조준 사격했을 거란 얘기도 나왔습니다, 당시 광주기독병원 응급실장이 관련 의혹을 제기한 건데요.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집단 암매장 등에 관련해선 기억하고 계신 부분이 있습니까?
기억에 남는 시민은 없는지, 지금 말씀하신 것 외에 기억하고 계신 다른 부분들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오랜 시간, 5·18 민주화 운동을 놓고 북한군의 소행 등 여러 이야기들이 많았었는데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김 중사님의 공개 증언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 다른 계엄군 출신들에게도 큰 메시지가 될 것 같은데요. 계엄군과 당시 광주시민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와 함께 당시 상황을 규명하기 위해 애쓰고 계신데요. 앞으로 계속 힘써주시길 부탁드리면서, 5·18 진상조사위에 하고 싶은 이야기 있다면 끝으로 한마디 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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