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연말 '국정조사 정국' 전개…"정쟁 아닌 진실을"
[앵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여야가 어렵사리 절충점을 찾은 결과인데, 앞으로의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아 보입니다.
실체적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에 도달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데요.
이번 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꽃다운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새 약 한 달이 흘렀습니다.
잊을 수 없는, 또 잊어선 안 되는 이번 참사는, 그저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수사와 별개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입니다.
희생자 유족들은 지난 22일 처음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아직도 문을 열고 들어와 '다녀왔다'고 말할 것만 같은 자녀들,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유족들의 어깨는 한없이 떨렸습니다.
유족들은 '내 자녀의 일이어도 방관할 수 있겠느냐'고 절규했고, 진정한 사과와 진상 규명 그리고 희생자 추모를 위한 조치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논의도 앞서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국민의힘은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검토하겠다'는 당초 입장에서 선회해, 내년도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동의하며 전격적인 여야 합의가 이뤄졌고, 지난 24일 본회의에서 찬성 220표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계획서가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찬성 220인, 반대 13인, 기권 21인으로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 승인의 건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국민의힘 7명, 민주당 9명, 비교섭단체 2명 등 모두 18명으로 구성해 닻을 올렸습니다.
"어느 당에 득이 되고 실이 되느냐의 문제를 벗어던지고… 국민의 요청을 절절하게 깨닫고 대안을 만드는 국정조사가 되도록…"
사안마다 충돌하던 여야는 긴 줄다리기 끝에, 모처럼 '정치적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했는데요.
이제 그 합의문의 내용을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국정조사 특위 활동 기한은 지난 24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모두 45일.
당초 야당이 주장했던 60일에서 단축된 것인데, 다만 본회의 의결을 통해 연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이뤄지는 동안 예비조사를 거쳐, 예산안 처리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기관 보고와 현장조사, 청문회 등에 나설 계획입니다.
여야가 가장 큰 이견을 빚었던 조사 대상에는 대통령실 국정상황실과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그리고 대검찰청 등이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대검 포함 여부는 막판까지 진통이 이어졌습니다.
국민의힘은 합의문 작성 이튿날, 대검 제외를 주장하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참사와의 연관성이 없지 않느냐'는 당내 이견이 불거진 것인데, 이에 따라 원내지도부 간 물밑 조율로 다시 대검은 마약수사 전담 부서만 대상에 올리기로 최종 합의했습니다.
"대검찰청은 마약수사 부서에 한해서만 하고 마약에 관한 질의를 하는 것으로 해서 만족스럽진 않지만 합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다만 장제원 의원을 비롯한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에서도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한편 이번 계획서에는 '맹탕 국조' 방지를 위해 '정부기관이나 단체, 개인 등이 수사상 이유로 조사에 불응하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눈길을 끌었습니다.
합의문에는 정부조직법 개편안 논의를 위한 협의체와 대선 공통공약 추진단 구성도 포함됐습니다.
여당으로선 예산안 처리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실리를, 야당으로선 '반쪽' 국정조사를 피하는 명분을 각각 챙겼습니다.
하지만 공언대로 '정쟁이 아닌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춰 순항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정조사 계획서에는 이번 참사의 원인을 몇 가지 구체적으로 적시했습니다.
많은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이 예상됐음에도 안전관리 대책이 부재했던 점, 시민들의 구조 요청에도 즉각적인 대처가 없던 점, 또 초기 보고와 대응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점 등입니다.
결국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한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느냐가 관건인데, 여기서부터 이견이 큽니다.
국민의힘은 용산경찰서 등 주로 일선의 책임을 질타해왔지만,
"용산서 경비과에서 서울청에 기동대 요청을 하지 않았던 내용들에 대해 (이태원 사고조사)특위 위원들의 강한 지적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말로만 철저 규명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상민 장관부터 파면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증인 채택 단계부터 신경전이 벌어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기간은 약 한 달 정도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야당과 이를 반대하는 여당 간의 기싸움이 재연될 가능성도 나옵니다.
일부 유족들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가 협상의 도구로 소모된 채, 맥 없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정치 지도자 네루는 정치의 요체를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 국어 사전에도 정치의 정의 중 하나로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이 명시돼 있습니다.
6년 만에 실시되는 국정조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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