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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육성 회고록 〈9〉
내 삶에는 두 여인의 향기가 서려 있다. 내 운명의 연인(戀人)에 관해 이야기하련다.
1959년 8월 나의 첫 여인이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궁핍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내 차용애가 아들 둘(홍일·홍업)을 남긴 채 32세 나이로 요절(夭折)했다. 그녀를 본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목포공립상업학교(목상)를 졸업한 뒤 해방 직전인 44년 전남기선㈜이란 해운회사에 취직해 회계 서무를 맡았다. 그해 여름, 사무실 앞에 앉아 길거리를 내다보다 한 여성에게 눈길이 꽂혔다. 하얀 원피스 차림에 양산을 받쳐 든 젊은 여성이 눈부셨다. 하얀 피부에 머리는 단정히 빗어 넘겼다. 우중충한 항구도시 목포에서 그렇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성은 처음 봤다.
첫눈에 반한 첫 아내 차용애
첫눈에 반했다. 스무 살의 청춘 김대중은 상사병이라도 걸린 듯 그녀의 자태를 머리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의 신상을 수소문했다. ‘차용애’라는 이름을 가진, 목상 동기동창의 누이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니다 일본 본토에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얼마 전 귀국했다고 한다.
친구의 여동생이라니, 인연이었다. 친구 핑계를 대고 그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말문을 트고, 극장도 같이 가면서 가까워졌다. 우리는 애틋한 감정을 고백하고,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그런데 그녀의 부친이 우리 결혼에 반대했다. 내가 징집돼 일본의 전쟁터에 끌려가 죽어버리면 딸이 과부로 살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당시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은 젊은이들...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6374?cloc=daily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