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가난'이라는 질곡의 시간을 걷던 1960~70년대.
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로 건너간 어제의 청춘, 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들의 군대'로 불리는 간호사 세계에서 고된 근무와 인종 차별, 문화적 충격을 견뎌낸 50년 세월.
작고 여린 체구로, 절대 녹록지 않았던 '독일 살이'를 지탱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파독 간호사, 오늘은 오롯이 그녀들의 숨겨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정광수 / 1970년 파독 간호사 : 제 고향은 삼천포 지리산 밑이었는데 굉장히 빨갱이도 많고, 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에도 인민군이 와서 사람을 죽이고 그랬거든. 우리 사촌 오빠도 잡아갔어요.]
1950년 9월 25일, 총성이 난무하는 지독한 전쟁 통에 어린 광수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나이 예순일곱(67)에 낳은 늦둥이 막내딸.
광수의 출생은 악몽과도 같은 일이었지요.
[정광수 / 1970년 파독 간호사 : 제가 3살 때 천연두를 앓았다 하더라. 그런데 그때는 다 죽으니까 죽는 줄 알았대요. 저도. 그런데 저는 살았어요. 흉이 참 많았거든….]
얼굴을 뒤덮은 흉터 자국을 볼 때마다 '차라리 죽을 걸'하며 몸서리를 쳤습니다.
삼천포 앞바다 벼랑 끝에서 몇 번이고 자살을 생각하던 어느 날, 신문에서 '파독 간호사'를 뽑는다는 글귀를 봤습니다.
집 떠나 돈을 벌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잡기 위해 없는 살림에 어머니를 졸라 1년 동안 간호 학원에 다녔습니다.
[정광수 / 1970년 파독 간호사 : 왜 (파독 간호사를 하러) 가려고 하노? 그러니까 오빠 우리 형편이 이런데 내가 성형수술을 해야 하니 독일 가서 돈 벌어서 나는 성형수술을 할래. 그랬더니 오빠가 대답을 못 하겠더래. 자기도 경제 형편이 안 좋으니까. 그래 그럼 꼭 3년만 있다가 와라.]
1970년 9월 30일, 스무 살 광수가 독일 땅을 처음 밟던 날.
뿌연 안개가 자욱한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정광수 / 1970년 파독 간호사 : 히피들이 머리는 이렇게 길러서 옷은 벗고 누워있고 그렇더라고. 그런 게 대한민국에서는 한 번도 못 본 상태였어. 문화의 충격. 그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녀가 일하게 된 곳은 심장내과.
납으로 만든 무거운 옷을 입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독일 간호사들은 꺼리는 일이랍니다.
[정광수 / 1970년 파독 간호사 : 엑스레이 방사선 (방지) 옷을 입고 일해...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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