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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육성 회고록 〈23〉
“햇볕정책은 미국의 성공에서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냉전체제를 유지했습니다. 결국 돌아온 것은 무기 경쟁뿐이었고, 공멸의 위기감이 높아졌습니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데탕트 정책으로 바꿨습니다. 15년 정도 지나니 소련이 스스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1998년 6월 9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나, 김대중(DJ)과 클린턴의 단독회담이 진행됐다. 상견례 성격의 자리였지만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유가 있었다. 클린턴이 회담 막판에 내게 ‘햇볕정책’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화해 정책이 성공한 사례를 거론한 뒤 쿠바와 북한의 경우를 언급했다.
“쿠바를 봉쇄하며 압박했지만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공산주의는 문을 열면 망하고, 닫으면 강해집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를 대할 때 군사적 힘으로 도발은 막고, 다른 한쪽으로는 개방을 유도해야 합니다.”
나는 햇볕정책을 “찬바람 대신 따뜻한 햇볕을 서로 보내면서 화해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압축했다. 클린턴은 전폭적인 지지를 표하며 화답했다.
“김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고, 나는 조수석으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습니다. 김 대통령의 비중과 경륜으로 볼 때 이제 한반도 문제를 주도해 주기 바랍니다.”
“외투 벗기려면 햇볕이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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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648?cloc=dailymotion